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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다리와 한강의 역사

잘 되고 있어 2016. 9. 19. 14:52
2016-09-18 발행번호 : 2


◈ 한강의 다리와 한강의 역사



▲ 한강의 다리와 한강의 역사

한강의 옛 이름 광개토대왕비에는 '아리수' 백제 문헌에는

'욱리하'라 하였다. 신라 문헌에는 상류를 '이하'

'북독'이라 하였고, 하류를 '왕봉하'라 하였다.
또, `한산하'라 하였는데, 한산은 북한산 을 뜻한다.

백제 때에는 `한수'라 하였다가 한강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그 뜻은 큰 강을 뜻하는 한가람식 한자 표기로 보고 있다.

고려 때에는 '열수'사평도' '사리진'이라 하였다.
열수는 아리수와 같은 계열의 한자어이고,
강변에 모래가 많아 사평도,사리진이라고도 불렀다.
조선 시대에는`경강'(서울의 강)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 한강의 위치에 따른 이름
서빙고 앞의 한강을 빙호, 옥수동 앞을 동호(東湖),
금호동 앞을 금호, 동작동 앞을 동호(銅湖) 또는 동작강,
마포 앞을 마호 또는 마포강, 서강 앞을 서호 또는 서강,
용산 앞을 용호 또는 용산강, 노량진 앞을 노강 또는 노들강,
김포 북쪽을 조강이라 하였다.

♧ 한강에 대한 여러 기록

한강에서 최초의 증기선이 운항한 것은 1888년이다.
최초의 한강 철교는 1900년에, 최초의 인도교는 1916년에 놓였고,
1936년에는 폭 20m, 길이 1005m의 새 인도교가 놓였다.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로 숭례문 앞까지 물이 차서,

404명이 익사하고,
1만 2천호 이상의 가옥이 유실되었다.

예전에는 한강의 발원지를 강원도 강릉시왕산면 고단1리
덕우산 기슭 피나무 밑 암반에 솟아나는 덕우샘터를
한강의 발원지로 '한강의 생명수'라 불렸다.

인근에는 광복후 49인의 이지역 유지들이 건립한 칠연정이 있어
잠시 머물러 자연을 감상할수도 있다.(강릉시 왕산면 고단리)
지금은 국립지리원에서 남한강의 발원지를 금대봉

검룡소로 수정하였다.



▲ 한강의 다리 한강다리 32개

한강은 길이 514 km, 유역면적 34,397 km² 이다.
서울에서 한강의 북쪽도로는 강변북로, 남쪽은 올림픽대로가 있다.

한강은 6호선, 8호선, 9호선, 분당선 [2010년에 한강을

통과하는 하저터널 건설],
인천국제공항철도, 인천 메트로 1호선을 제외한

모든 수도권 지하철 노선들이
교각 1호선 (용산역~노량진역], 2호선 [강변역~성내역,

당산역~합정역],
3호선 [옥수역~압구정역], 4호선 [이촌역~동작역],

7호선 [뚝섬유원지역~청담역]
또는 하저터널[5호선 (여의나루역~마포역, 광나루역~천호역'
이 유일]을 通해 관통하며 2010年,
현재까지 28'개의 다리를 지니고 있다.



▲ 일산대교[一山大橋 -1,849m]

일산대교는 길이 1.84㎞, 폭 28.5m의 6차로로
2003년 8월에 착공하여 2008년 1월에 개통했다.

한강 교량 중 가장 서쪽에 있고
경기도에서 시공한 교량 건설로는 최초로
민자사업으로 추진되었다.

교량의 본선은 경량화된 고강도 강재를 사용하여
용접개소 및 부재개소를 최소화 하여 구
조를 단순화한 소수주형 판형교로 시공되었다.

수상구간의 시공을 위한 가도 축조에도 설치와 해체가 용이하고
환경오염이 없는 친환경 축조공법인 지오튜브 공법을 적용해
외부 토사반입 없이 자체 하상 준설토로 제체를 설치했다.

일산대교의 개통으로 김포·강화 일대의 유적과
관광자원을 활용한 레저 시설이 활성화되고,
일산의 관광문화단지, 파주시의 통일동산·임진각 등과 연계한
개발과 접근성을 확보하여 지역의 균형발전을 촉진하고 있다.



▲ 김포대교[金浦大橋 - 2280m : 외곽순환고속도로와연결]

경기도 김포시 고촌면 신곡리와 고양시를 잇는 다리로
길이 2,280m[총연장 1,475m], 너비 38.2m이다.

차도는 8차선으로 28.8m이고 중앙에는 너비 3.4m의

분리대가 설치되어 있다.
하부구조는 교대가 20기이고, 경간 사이의 최대 거리는

125m에 이른다.

서울 외부순환고속도로 계획에 따라 건설되었으며
한강 다리로는 21번째이다.한강 다리 중에서 너비가

가장 넓고 길이도 가장 길다.

남쪽은 김포제방도로를 가로지르고
고양시 쪽으로는 자유로를 가로 지른다.
자유로와는 신평인터체인지로 이어지며,
남쪽에서는 김포인터체인지에서 48번 국도와 이어진다.

최신식 다리인만큼 하부의 교각이
상부구조와 조화를 이루어 미관이 뛰어나다.
김포시와 고양시 일산 지역은 물론 문산읍과 파주시,
서울특별시 서부 지역의교통난을 분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신행주대교[新幸州大橋 - 1460m]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과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을 잇는 다리로
길이 1,460m, 너비 14.5m이며 1995년 5월 개통되었다.

1996년부터는 제2신행주대교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2000년 12월 16일 개통되었다.
이에 따라 신행주대교는 고양시에서 서울방향,
제2신행주대교는 서울에서 고양시 방향으로 각각

일방통행하게 되었다.

각 노선은 편도 3차선이다.
그리고 그 동안 승용차만 다니던 행주대교는
비상도로로 활용하다가 철거될 계획이다.



▲ 방화대교[傍花大橋 -2559m :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와연결]

강서구 방화동과 경기도 고양시 강매동을 잇는 다리를 말하는데
연장 2,559m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구간 중
서울특별시 입구에 건설된 다리이다.

한강을 횡단하는 다리 가운데 27번째로 건설된 최장 교량이며,
특히 중앙부 540m의 아치트러스[arch truss]橋는
비행기의 이착륙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미관이 뛰어나서
남쪽의 개화산과 북쪽의 행주산성 등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가양대교[加陽大橋 - 1608m]

마포구 상암동과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북단은 강변북로와 자유로가, 남단은 올림픽대로가 연결된다.

1994년 12월 착공하여 2002년 5월 31일 준공되었다.
교각과 교각 사이의 거리가 최소 100m, 최대 180m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길다.
교량의 길이는 약 2.5Km로 大橋이다.



▲ 성산대교[城山大橋 - 1410m]

마포구 망원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잇는 길이 1,410m.

너비 27m이다. 1980년 6월 30일에 개통되었다.

국도 제1호선 및 국도 제48호선의 일부이며,
서부간선도로'를 거쳐 서해안고속도로'로 이어진다.

성산로[독립문∼경인고속도로 입구]의 건설과 함께

시공되었으며,
제2한강교의 교통량 분산과,
김포공항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시간을

단축시키는효과를 가져왔다.

이 다리는 한강의 12번째 교량으로서
성수대교와 같은 트러스 공법으로 세워졌는데,
외측을 반달형으로 하여 특유한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 양화대교[楊花大橋 -1053m]

특히 양화대교는 한강다리가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60년대의 첫 교량이다.
60년대에 들어서 경제개발이 시작되었고,
1965년 1월 제2한강교라 불린 양화대교가 등장했다.

합정동과 당산동을 잇는 양화대교는
영등포와 인천·김포공항으로 가는서울의 서부관문이기도 하다.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1962년 6월 20일 착공되어 1965년1월 25일 준공 개통되었다.

준공 당시에는 "제2한강교"라 불리었으며
1982년 9월 현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다리 남쪽에 선유도공원이 있다.
약 1.6KM로 당산역에서 조금만 걸으면 보이는 곳이다.



▲ 당산철교[堂山鐵橋 - 1360m :지하철2호선전용]

서울 지하철 2호선의 당산역과 합정역을 연결하는 철교이다.
1983년에 완공되었으며,
1984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완전 개통으로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한강의 3번째 철교이다.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여파로 당산철교도 교량 점검

후폭풍이 불었다.
완공 10년 후에 실시된 교량 점검 과정에서,
상판은 물론 교각 자체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견,
전면 재시공이 결정되면서1996년 末에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되어
당산역-합정역 구간이 한때 단절되었다.

이후 약 3년간 당산역과 합정역 및
홍대입구역을 임시로 드나드는 무료셔틀버스가 운행되었고
2호선 열차가 합정역에 임시로 회차선을 만들어

회차하기도 했다.

1999년 가을에 당산철교가 다시 개통되어
현재까지도 별 문제 없이 교량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교량의 길이는 약 1.2km이며, 높이는 약 30m에 이른다



▲ 서강대교[西江大橋 - 1700m]

1999年 준공된 서강대교는
철새도래지인 밤섬을 가로질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한강의 수질보호와 밤섬 철새도래지의 보호를 위하여
콘크리트 상판 960m를 연속압출공법[시공
관리가 용이하고 속도가 빠름]으로 가설하였으며,
아치형 다리로 수려한 미관을 자랑한다.



▲ 마포대교[麻浦大橋 - 1400m]

마포구 마포동과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잇는 다리이다.
길이는 1.6km이며 왕복 10차선 다리이다.

초기 이름은 서울대교였지만
추후 마포대교로 개명되었으며,1970년 착공되었다.

하지만 이 다리가 건설된 이후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나중에 원효대교를 건설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 다리로 인해 여의도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다리는 한강에서 4번째로 설치되었다.
2008년 8월부터 11월까지 보행환경 개선공사로
왕복 8차선으로 다리가 축소된 적도 있었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은 이 다리와 평행한 하저 터널로
여의나루역과 마포역이 이어진다.



▲ 원효대교[元曉大橋 - 1470m]

용산구 원효로 4가와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잇는다.
1978년 7월에 착공, 1981년 10월 27일에 완성되었다.

폭은 20미터(차도폭 15.4미터, 보도폭 4.6미터에,4차선 규모로
총연장 1,120미터의 원효대교는
지보공이 없는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장대교량이다.

원효대교는 독일의 디비닥 공법 및
프리 캔틸레버 공법을 이용하여 건설되었다.

원래 동아건설(주)에서 건설하여
개통 초기에는 통행료를 징수했으나,
이후 1984년 서울시에 다리의 소유권을 기부한 이후
톨게이트는 철거되었다.



▲ 한강철교[漢江鐵橋 - 1110m : 지하철1호선과

기타여러기차전용]

한강의 교량 중 최초로 건설된 교량으로,
노량진역과 용산역 사이를 잇는 철교이다.

1900년 한강 이남으로 노량진역에서 끊겨있던 경인선을
용산역과 남대문역[現 서울역]까지 연장하기 위하여

건설된 철도 전용 교량이다.
현재 경인선, 경부선등의 열차가 이용하는 교량이다.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 당시 건설된 A·B·C선은
2006년에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1912년의 한강철교

1900년 7월 5일 ?莫便?한강 위에 놓인 최초의 다리 한강철교..
현재는 운송량의 증가와 맞물려 4개까지 늘어났다.

상류에서 하류 측으로 A-B-C-D 순으로 자리 잡은 4개의

한강철교는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데,
철교-A는 용산에서 부평간 경인선 열차가, B는 화물열차,
C는 경부선·장항선·호남선 등의 철도가,D는 경인·경수

전동차가 다니고 있다.



▲ 한강대교[漢江大橋 - 1005m]

한강대교는 1900년에 건설된 한강철교 이후
최초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인도교로 건설된 것이다.
이 때문에 개통 초기에는 제1한강교라고 불리었다.

1912년에 교량가설계획을 수립한 후 1917년 10월에

준공되었다.
1925년 7월의 을축년 대홍수로
중지도에서 용산쪽으로 건설되었던 소교가 유실되었다.

1929년 9월에 소교를 재개통하였고 폭은 18m로 확장되었다.
너비 36.6m, 길이 841.5m이고
교량 중간에 중지도가 있는 한강상 최초의 도로교이다.

한강대교는 서울에서 남쪽방면의 노량진으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관문위치라 할 수 있다.

서울의 관문인 한강대교 건설에는
당시 총공사비 84만 3,000원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노량진 쪽에는 경간 60m인 3운(運) 한강소교를 설치하고
양쪽 다리 중간은 401m의 둑을 쌓아 연결하였다.

1900년한강철교가 가설되고 17년 동안 인도교가

가설되지 않은 것은
당시의 도시내 교통수단이 보행위주였으며
화물은 철도와 지게로서 운송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반도에 민간인의 영업차가 들어온 것이 1912년이었고
이때부터 다리가설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 다리는 한강철교의 낡은 자재를 이용하여 가설하였으므로

폭이 좁고 중앙차도 4m, 좌우측보도는 각 1m에 불과하였다.

그 후 1925년에 있었던 을축년 대홍수 때 중간둑이 유실되어
용산측 한강소교가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자
제1차로 한강소교를 철폐하고 종래의 둑을 쌓았던 곳까지 연장하여
459m의 대다리 가설공사를 1927년 5월에 착수하여

1929년 9월에 준공하고
9월 18일에 파교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120만원의 공사비가 소요되었다.



한편, 노량진의 본동쪽 한강교는 종전대로 사용하다가
1934년 3개년 계획으로 공사비 251만 8,000원을 들여서
현재의 타이드아치(tied arch) 형식의 다리로 다시

1937년에 준공하였는데,
이 때 한 한국 다리 기술자가 감독으로 참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1950년 6·25동란으로 타이드아치 3경간이 파괴되었던 것이
1957년 1월에 복구공사를 착수하여 1958년 5월 15일에 준공되어
서울의 명물이었던 한강대교가 새로운 모습을 되찾게 된 것이다.

1981년 원래의 한강인도교 하류 쪽에 전과 동일한

6경간 타이드아치를,
그리고 거더교 구간에서 상류측에 19경간의 판형교를 가설하여
교량을 완전히 2배로 확장하였는데, 이때부터 이름이

한강대교로 바뀌었다.

한강인도교가 처음 건설되었을 당시부터
S자형의 평면노선이었던 것을 대칭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 동안 차량의 증가로 인하여 기존의 구교량만으로는
폭주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신설된 제1한강교∼관악구청간 도로에 의하여 부가되는
도로교통량의 처리도 문제가 되어 불가피하게

확장공사를 하였다.

이 교량은 건설부국도 1호선의 한강횡단 교량으로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수도서울의 관문이며
우리 민족과 희비애락을 함께 해온 역사의 증인이다.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규정에 따라 구교는
1995년 12월에서 1996년 11월,
신교는 1997년 6월에서 1997년 12월에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설계하중(DB·24) 확보에는 지장이 없으나
다리 수명 연장이나 기능 원활을 위해
1998년 1월부터 2000년까지 구교를 보수하였고,
신교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노면 포장·도장 공사·점검통로설치 등의

보수공사를 마무리하였다.



▲ 동작대교[銅雀大橋 - 1330m, 가운데에지하철4호선지나감]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과 서초구 반포동을 잇는
총연장 1, 330m 의 한강 다리이다.

한강 다리 중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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