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3 인생방식
어느 날
TVN <스타특강쇼>에서 김미경 씨가
7:3법칙을 애기했는데 너무도
공감이 갔다.
세상에는
원하는 것이 7이라면
싫어하는 것은 반드시 3이 있다는
내용이다.
꿈도 역시 7:3을 벗어날 수가 없다.
꿈이란 본시
내가 좋아하는 것이 70이라면
반드시 하기 싫은 것이
30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꿈이 있고
그 꿈을 성취하길 원한다면
내가 그리도 싫어하는 30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자신이 평소에 행복하게 여기는
70이라는 신세계는
열릴 수 없다는 논리였다.
김미경 씨가
좋아하는 70은 물론 강의(講義)지만
그 일을 위해서는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30이라는 산이
딱 버티고 있었다.
청중의 입장에선
강의란 입만 열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실상
강의란
입을 열기 전에
머리와 손과 발이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한다.
그동안 했던 내용과 겹치지 않고
또 신선한 전달을 위해
스텝들과 수없는 회의를 거듭함으로 새로운
컨텐츠를 개발해야만
유명한 강사로서
수명이 길어지게 된다.
준비 과정은 한없이 고통스럽지만
이런 30의
고통이 있었기에
그녀가 좋아하는 강의라는 70을
맘껏 누릴 수가 있었다고
고백했었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꿈을 꾼다.
꿈이 있어야만
사람답게 살 수가 있고
꿈이 있기에
오늘이라는 현실을 이겨내며
또한 내일을 향해 발을 내 딛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꿈을 찾아
헤매는 것은 인생 자체가
고해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통계를 보니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보다
자살해서 죽은 사람의 숫자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안 후에
나는 새삼
고해(苦海)라는 말이 더더욱
이해가 갔다.
오죽 견디기
힘들었으면 자살을 택했을까.
삶은 그만큼 힘들고
복잡하다는 간접 설명이 될 것이다.
이런 광야 같은
세상이기에 꿈을 성취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만만치 않는 세상이기에
자신이 즐기고
행복해 하는 70을 누리기 전에 먼저
자기 노력과
인간애적인 덕(德)의 과정인
30의 영역은 더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흔히
20%가 80%을 먹여 살린다는
2:8 법칙인
파레토에 대해선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3:7 법칙은
2:8 법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과정이다.
파레토는 단순히
소득분포에 관한 통계적 법칙이라면
3:7은 인생의
절대적인 생존법을 초월한
행복한 인생 원칙과도 같은 잠언이기에
인생에서
2:8 법칙보다
3:7 법칙이 훨씬 중요하다
말할 수 있다.
먼저 70이라는
성실한 땀을 기본적으로 아무리
잘 흘린다 해도
나머지 30의 역할은 땀보다 더 컸던 것이다.
파레토처럼
2가 8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3이 있어야
7이 존재가치를 갖기에
7을 위해서라도
3에 대한
과정을 성실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바다와 육지도 7:3이요
머리 앞가르마도 7:3을 지켜주어야
남자의 부드러움을 지켜주고,
교통사고 과실비율도
대부분 7:3으로 판결이 나고,
다이어트를 하려해도
음식조절이 7이라면 운동은 3이라고 한다.
심지어
기술이 70%를 차지해도
나머지 30%는 진솔한 인간이 되어야
사람답게 대접받을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이렇게
7:3이라는 구조 속에서 진행되고 있듯이,
나이가 들수록
7보다
3에 더 가치를 두고 실제로
나머지 3을 위해
살아야만
아련한 인생이 풍성한 보름달 같은
인생으로 살 수 있다.
광야이기에 우회가 없다.
광야이기에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이가 없다.
광야에선 잔꾀가 통하지 않는다.
미련할 만큼
정공법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인생과 현실 속에
거대한 파도가 내 앞에 밀어닥칠 때마다
샤머니즘처럼
자기방식과 본능대로
30을 자꾸만
무시하고
어리석게 70안에서만 서성거리려 한다.
누구도
내 대신 30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세상 무엇으로도
30을 대신할 수 있는 것도
없음에도
막연하게
믿음이라는 이름을 갖고
소망이라는 이름을 갖고
촌음과 같은
시간을 낭비할 때가 있다.
몸무게 하나 줄이려
새벽에 일어나
헬스장에 가서 2시간 운동이
죽기보다 싫지만
몸매보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선
반드시 통과해야 할 30의 의례처럼,
꿈을 이루려면
늘어난 살도 빼야하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살을 빼어내어
더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살아가야 함에도
대부분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오히려
노욕이 생겨
30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70이라는 나이 든 자의
특권에 집착하느라
본인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간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하기 싫은 30을 하기란
더욱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누구도 예외일 수가 없기에 스스로
30을 알고
30을 위해서
눈을 감는 순간까지 정진해야만
70 속에 행복을 누리고
실제
7학년이 되어서도
초조해 하지 않고 쉬엄쉬엄 가더라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
갈 수가 있다.
아니
5학년부터는
다음 세 가지를 스스로 질문해 봐야한다.
아직도
완벽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아직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가.
아직도
남과 비교하는가.
벼는 익을수록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추수를 기다리고,
고수는
내공이 쌓일수록 기를 갈무리하는
능력이 생겨야 하는 것인데
어찌하여
우린 나이가 들수록 더
추해지는 것일까.
아니 아직도
내려놓음의 은총을 모른단 말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하길 작정했단
말인가.
나이가 들면
신체에 여러 변화가 엄습해 온다.
아침잠도 줄어들고
조금만 일을 해도 쉽게 피곤함이 몰려온다.
마치 새 배터리는 오래 충전하고
오랫동안 사용하나,
오래된 배터리는 잠깐만 충전하여
잠깐 밖에 못 쓰듯이,
기억력도 순발력도
느려지고
만사가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자식이 나도 모르게 상조회사에 내 이름을
가입할
날이 오기 전에
아니 그 날을 위해서라도
오늘
내 몫의 30을 기쁨으로 감당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