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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을 벗었다 자유를 찾았다

잘 되고 있어 2017. 2. 23. 10:45

가발을 벗었다, 자유를 찾았다



 탈모인구 1천만명 시대..편견·차별에 도전하는 사람들

[한겨레]

우리 사회에서 대머리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대머리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이나 결혼, 연애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대머리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서라도 대머리임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공무원인 조윤권(가명·44)씨는 며칠 전 가발을 벗어던졌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디오시와 춤을’ 노래를 듣고 난 뒤다. “뒤통수가 예뻐야만 빡빡 미나요/ 나는 뒤통수가 안 예뻐도 빡빡 밀어요/ (중략) / 옆집 아저씨 반짝 대머리 옆으로 속알머리 감추려고 애써요/ 억지로 빗어넘긴 머리 약한 모습이에요/ 감추지 마요. 빡빡 밀어 요요요~.”

탈모인 늘어나도 여전한 편견
취업·결혼 등에서 좌절 수두룩
그래도 “당당해지자” 다짐하는 이들
“가발·치료 포기하니 행복해”

“대머리를 죄인처럼 감추고 숨기기에 급급했던 날들이 후회스러웠어요.” 그가 대머리의 굴레에서 벗어난 건 20년 만이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는 세상이 내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매사 진취적이고 적극적이었다. 급격한 변화가 온 건 20대 후반부터다. 갑작스레 탈모가 진행됐다. 샤워를 하고 나면 욕실 수챗구멍이 온통 검은색 머리카락으로 가득 찼다.

탈모를 막으려는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탈모 샴푸는 효과가 기대에 못 미쳤고, 가발은 더 어색하더군요.” 소개팅 자리에선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30대 중반이 넘어 지금의 아내를 만난 건 행운이다. 가발과 모자에 의지하던 그는 지난해 가을, 탈모 치료를 위해 병원 문을 두드렸다. 앞머리는 이제 몇 가닥 남지도 않았다. 한쪽으로 빗어넘겨 왁스로 고정시켜 봐도 바람 한번 불면 민망한 상황에 처했다. 누가 봐도 ‘가발이구나!’ 알 만한 가발은, 여름이면 땀띠라는 또 다른 고역을 안겨줬다. “머리카락만 안 빠졌다면 내 삶도 지금보다 훨씬 좋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니 매월 진료비가 50만원에 육박해도 머리카락만 다시 날 수 있다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탈모 인구 1천만 시대. 건강보험공단이 2013년 낸 자료를 보면 한국인 5명 가운데 1명 꼴로 탈모인이다. 업계에서는 이 가운데 350여만명이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추정한다. 탈모 관련 시장이 몇 년 사이 2천억원대에서 8천억원대까지 급성장한 배경이다. 그럼에도 탈모인이나 대머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나쁘다.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가 가발 없이 검찰에 출석한 모습이, 충격과 비웃음이 담긴 가십으로 소비된 일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취업이나 결혼을 앞두고 대머리 때문에 낭패를 본 이들의 사연도 차고 넘친다. 취업 목전에서 매번 좌절을 맛본 최수환(가명·28)씨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등은 그나마 나은데, 서비스 직종은 ‘용모 단정’이 취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대머리의 기준도 애매한데다 왜 대머리가 ‘용모 불량’으로 인식되는지 억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엔 서울시내 한 호텔의 아르바이트생이 대머리라는 이유로 해고당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고, 인권위는 “대머리 채용 거부는 차별에 해당하므로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라”는 권고를 하기도 했다. 20대 중반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는 강민호(42·디자이너)씨는 대머리라는 이유로 결혼을 포기해야 할 뻔했다. 그는 “저를 보신 장모님께서 결혼을 반대하셨다. 가발을 쓰는 조건으로 겨우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렇게 대머리 남성이 취업과 결혼에 성공하기는 녹록하지 않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2013년 기업 인사담당자 273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4.2%가 ‘채용 시 지원자의 겉모습이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지난해 말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가 전국의 비혼남녀 512명(남녀 각 25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대머리가 ‘결혼 상대 부적격자’ 1위(여성 응답자의 20%)로 꼽혔다.

그럼에도 탈모인들은 편견에 맞선 ‘용감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조윤권씨는 가발을 벗어던지며 탈모 치료도 중단했다. 자극이 되어준 건 큰아들 친구의 아버지이자 이웃사촌인 미국인 데이비드다. 데이비드는 전형적인 빡빡머리다. 미국에선 머리숱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취업이나 결혼에 크게 불이익을 당하는 일도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유독 대머리를 희화화하거나, 조폭이나 저항의 키워드로 포장해 대머리 혐오감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어요. 그렇기에 저도 어떻게든 대머리를 감추려 했던 것 같고요. 불운이 닥칠 때면 머리카락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원망하기 급급했죠. 당당한 데이비드가 부러웠고, 스스로가 부끄러웠어요.” 그는 나이 들어 주름살이 생기듯, 머리카락 빠지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나아지겠죠. 우리 아들들이 저처럼 마음고생을 하지 않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두 아들을 위해서라도 그는 당당해져야겠다고 다짐한다.

강민호씨는 결혼한 지 10년, 그러니까 가발을 착용한 지 10년 만인 지난해 초부터 제 머리를 드러내고 다닌다. “두피 전체를 이식해서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제 모습을 꿈속에서 바라기도 했고, 대통령이 되어 삭발령을 내리는 꿈을 꾼 적이 있을 정도로 콤플렉스가 심했어요. 그런데 콤플렉스보다 가발이 더 불편해서 더는 못 견디겠더라고요. 가발을 벗고 나서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와 행복을 찾게 됐습니다. 장모님께서도 ‘그동안 고생했다. 이젠 사위가 사랑스럽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그는 자타공인 대머리 예찬론자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강씨는 “아이들 역시 위축된 아빠의 모습보다 대머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빠의 모습을 더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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