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팔십 줄에
강가에 혼자 사는 노인이 된 친구가 내게 전화를 했다.
“어제 정원에 있는 나무를 다듬고 상추밭을 정리했는데 몸이 작년하고 완전히 다른 것 같아. 힘이 들어. 그나마 이렇게 흙을 만질 수 있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소아마비로 어려서부터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데도 그 친구는 나무를 사랑하고 흙을 좋아했다.
바람결에 묻어 창문으로 들어오는 정원에 핀 꽃들의 향기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오래된 집 앞에 있는 호수같이 조용한 강물을 즐겼다.
그의 집에서 며칠간 묵은 적이 있었다.
밤이 되면 강가의 푸른 가로등의 불빛들이 검은 물 위에서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친구는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의 순간순간을 행복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가 잠시 침묵한 후에 말을 계속했다.
“우리가 제대로 살 수 있는 기간이 잘해야 십 년(?) 정도겠지? 지나보면 순간인 세월인데 이제 후회를 하지 말아야 할 텐데 말이야.”
우리는 팔십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성경을 보면 인생 칠십이고 근력이 좋아야 팔십이라고 했다.
백세시대라고 하고 칠십 청춘이라고 하지만 순간순간 최면을 거는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그와 친한 나는 그의 마음을 알고 있다.
젊어서는 가난이 그의 욕망을 막았다.
나이를 먹고 혼자되어도 아버지라는 위치 때문에 자식의 눈치를 보고 사회적 체면 때문에 주변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내남없이 나이가 먹어도 가슴속에 잃어버리지 않는 꿈들을 한둘씩은 가지고 있다.
소설가 박경리의 토지를 보면 한 여성이 평생을 가슴에 담고 있던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도 그녀를 사랑하지만 인생길이 엇갈려 서로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여자의 임종때 다행히도 우연히 그 남자의 품에 안기게 됐다.
평생을 과묵하던 남자가 죽어가는 여인에게 한마디 한다.
“니 내 마음 알제?”
사랑한다는 소리였다.
“압니더”
여인은 그 한마디를 하고 행복하게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하던 사랑의 모습이었다.
활활 타서 재가 되는 게 아니라 서로 스치면서 녹아 물이 되어 하나가 되는 사랑이라고 할까.
나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칠십 먹은 친구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주변을 보면 갑자기 암을 선고받는 친구들이 많다.
또 부인을 암으로 먼저 떠나 보내는 경우도 있다.
친한 친구의 부인이 있었다.
예쁘면서 능력 있고 정숙한 여인이었다.
젊어서 외국계 회사에 들어가 나중에는 뉴욕 본사에까지 가서 임원을 했던 여성이었다.
그런데도 남편 앞에서는 절대복종 하는 현모양처였다고 할까.
남편이 까탈을 부려도 인내하고 절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되는 나의 친구가 처의 암 투병 사실을 얘기하면서 당황해 했다.
그런 상황에 닥치면 많은 후회들이 따랐다.
어떤 선배는 병실에서 죽어가는 아내를 보면서 예쁜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히지 못하고 맨날 술 먹고 밤에 늦게 들어갔던 걸 후회했다.
외교관으로 총영사를 지낸 사람이 있었다.
주위에서 신사라고 할 만큼 깔끔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가 암이라는 하늘의 초청장을 받았다.
그는 가족에게 죽음에 대한 준비를 너무 하지 않았었다고 뒤늦게 후회를 하는 모습이었다.
죽음만이 아니라 갑자기 닥친 병에 낚시에 걸린 물고기 모양 당황하기도 했다.
며칠 전 소싯적 친구 한 명이 내게 전화를 걸어 자기가 갑자기 중풍을 맞아서 반신마비가 됐다고 연락했다.
일을 하느라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병실 침대에서 먹고 자고 텔레비전 보고 하니까 다른 세상으로 건너온 것 같다고 심정을 표현했었다.
그는 지팡이를 집고 뒤척거리면서도 산책을 하는 게 이제 남은 인생의 목표가 됐다고 했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뭘까.
바람같이 지나가는 남은 한정된 시간을 잘 사는 게 아닐까.
잘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음악을 듣고 천천히 걷고 글을 쓰는 평범한 일상의 순간순간을 감사하는 건 아닐까.
매일 카톡을 통해서라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고 또 신세 졌던 분들에게 작은 선물 하나라도 보내 고마움의 결제를 미리 해 두는 건 어떨까.
나는 전화를 내게 걸었던 친구에게 말했다.
“주저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 지금 이 순간이야. 내일을 보장할 수 없잖아.”
그 말이 나의 내면으로도 울림을 가지고 다가왔다.
아~~ 안아프고 얼마나 더살까?
- 옮긴 글입니다 益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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