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면서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태초로부터 인간이 백해무익한 미신에 사로잡혀, 인생을 고통스럽게 살다가 간다는 사실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후 겪어야만했던 괴로움이 여러 가지 있었겠지만 그 모든 아픔을 네 가지로 요약할 수는 있습니다.
첫째 먹고 사는 일, 둘째 늙어가는 일, 셋째 병드는 일, 넷째 죽어야 하는 일이 골자이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 타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이라는 동물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늙어서 팔‧다리가 쑤시고 아픈 것을 참지 못하고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병 없이 장수한다는 것(무병장수)은 불가능한 꿈이기 때문에 ‘미신’으로 치부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날 때부터 몸에 병이 있거나, 돌발적 사고로 인해 팔‧다리가 부러지는 불행을 겪지 않은 사람이라면 65세까지는 누구나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도 80에 육박하고 있다는데 무슨 소리냐고 노여워할 ‘속물들’도 있겠지만 그것도 모르고 내뱉는 넋두리일 뿐, 오래 살아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미신에 지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노망’난 노인이 한 마을에 하나나 둘 뿐이었는데 요새는 치매환자가 부지기수입니다. ‘치매에 걸려도 오래 살고 싶다“고 하면 모두가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나와 함께 연세대 문과대학에서 가르치던 작가 박영준 선생은 65세 정년퇴직하고 그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그가 오래 병들어 앓는 모습을 보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회갑을 맞는 노인도 많지 않았고 70을 살면 사람들이 ‘고희(古稀)’라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 세월이 오히려 그립지 않습니까? 87세의 노구를 이끌고 여기저기 다녀야 하는 한 노인의 아픔과 슬픔과 부끄러움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