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투이야기 ◑
명절이 되면 즐겨 하던 옛 놀이 문화는 어디가고 새로운 놀이 문화인 ‘화투’가 ‘국민놀이’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화투는 전자 회사로 유명한 소니의 전신 회사에서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그런 화투가 일제 강점기에 '조선 민중의 반항심을 누그러뜨리며 공동체 의식을 저해하려는 목적'으로 조선에 들어왔다는 것이 통설이고요.
그런데 풍수지리설을 믿는 진영 등 한국의 일각에서 화투는 일본의 것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것이며 그 화투에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담겨있다'라는 주장을 펼치는데, 화투의 유래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주장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원래 화투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17세기와 18세기에 성행한 數鬪(수투-사람 및 동물의 그림 여든 장으로 이루어진 투전)이 여러 가지 변형이 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화투로 되었으며 원래는 한국의 흥망성쇠를 푸는 열쇠가 담긴 것으로 한국을 유토피아로 만든다는 정도령의 도래와 관련 있는 것으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전래가 되었다가 일제시대 때에 한국(조선)으로 역수입 되었다는 설입니다.
두 번째 일본의 화투인 花札の八八는 포르투칼의 '카르타'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것이 일제시대 때에 조선 민중을 순치시키는 수단으로 도입이 되었다는 설입니다. 특히 화투의 기본이라는 민화투의 경우 민이 백성 '民'자라 인데 이것을 근거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화투의 유래와 관계없이 고스톱은 확실히 일본에서 발생, 전래된 것이 틀림이 없다는 것이 공통적인 견해입니다.1960년대 경제발전과 함께 일본에서 수입 되었으며, 이 고스톱은 일본의 하치하치(八八)과 그 게임 방법이 거의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花札(하나후다)는 위에서 언급한 수투(數鬪)이고 하치하치(八八)는 게임 룰이 한국의 고스톱과 흡사합니다.
즉, 화투로 하는 고스톱 쯤으로 번역이 됩니다.
어쨌든,한국식 화투와 일본식 화투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의 11월인 오동과 12월인 비가 일본식 화투인 花札の八八에서는 - 아참, 花札の八八은 '하나후다(花札) 노 하찌하찌'라고 읽는데 앞으로는 花札(하나후다)라고 약칭해서 쓰겠습니다. 11월은 비 그리고 12월은 오동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11월과 12월의 바뀐 순서에 바로 한국에서는 11월 오동을 '똥'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동을 한자로 쓰면 오동(梧桐)이 되어 사람들은 이것을 오동나무라고 착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한자 해석입니다. 우리 문헌에서는 벽오동 나무를 오동(梧桐)으로 표기해 왔으며 오동나무는 단지 오(梧)자로만 표기해왔기 때문에 화투에서의 오동은 벽오동 나무를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한국식 화투와 일본식 화투의 또 하나의 차이점은 바로 일장기가 그려진 것으로 판단되는팔월 '광'과 팔월의 피 두 장입니다. 우리나라의 화투에는 이 피 두 장에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고 십끗자리 에만 기러기가 그려져 있는데 일본식 화투에는 피 두 장에도 각각 동물이 그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일본의 풍습도 알 겸 , 화투의 상세를 살펴볼까요? (아래 그림 중 화투의 모양은 소장했던 그림으로, 그리고 일본의 풍습을 소개하기 위한 그림들은 야후 재팬의 '畵像(이미지)' 란에 올라온 것을 다운 받아 올린 것입니다.)
1월, 솔
우리나라에서는 정월초하룻날 대문에 '입춘대길(入春大吉)'이라고 묵필로 쓴 종이를 붙여서 한 해에 안녕과 복을 빌었는데 이런 세시풍습이 일본에도 있습니다. 흔히 카도마쯔(門松)라고 하는데 문 앞에 소나무를 세워두는 것입니다.
아래 그림은 각각 '카도마쯔'의 예와 문에 세운 카도마쯔의 사진입니다.
<카도마쯔와 카도마츠를 세운 집>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십장생이라고 하여 '학'을 십장생 중에 하나로 보고 있고 장수를 기원하는 의식 등에서 학 그림 등을 이용하는데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학은 장수의 동물이며 따라서 학을 그리며 장수를 가원하는 것을 매년 초에 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화투의 1월은 '소나무'와 '학'이 그려진 그림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1월 달의 '피' 두 장은 해가 뜨기 전의 상황으로 '일장기'의 상징으로 알려진 팔월의 '광'과 함께 일본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2월, 메주
한국에 음식 맛을 돋우는데 필수적인 각종 장류를 담구는 데 필요한 메주가 있다면 일본에는 입맛을 돋우는 대표적인 우메보시가 있습니다.한국의 메주가 보통 6월에 메주콩을 파종하여 10월 하순 정도 수확을 합니다. 그런 다음 한 달여 동안을 말린 상태로 보관을 합니다. 그러면 11월이나 12월이 되는데 이 때 메주콩으로 메주를 만듭니다. 메주를 만든 다음 메주를 뜨우게 되는데 약 한달 보름 정도 걸립니다. 그러면 메주는 2월초 정도 되면 만들어집니다. 이런 유래에서 화투에서 2월을 메주라고 불리게 된 것 같습니다만 2월 메주에 그려진 그림은 매화입니다.
일본에서는 매년 2월 매화 축제가 벌어진다고 하는데 그 매화의 열매로 만든 음식이 바로 우메보시(梅干)입니다. 그리고 2월 메주 십끗자리에 있는 새는 꾀꼬리류의 휘파람새(鶯-우구이쓰)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제비가 봄을 알린다면 일본에서는 이 휘파람새가 봄을 알린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우메보시(梅干)인데 이게 어떻게 입맛을 돋우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이 우매보시의 맛에 흠뻑 젖은 사람이 많을 정도로 맛이 좋다고 하는군요.
<매화 열매로 만든 우메보시>
3월 사쿠라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쿠라.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변절자나 내통자들을 '사쿠라'라고 하고 정치 역사를 보면 이 사쿠라 시비가 많이 일어났었는데 이 사쿠라는 일본의 '국화'입니다. 무궁화가 우리의 '국화'이듯. 그런데 3월의 광에는 사쿠라가 '바구니'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 이것은 바구니가 아니라 일종의 휘장과 같은 것입니다.
일본 용어로는 만마쿠(慢幕)라고 하는데 야후 재팬에서도 적당한 그림이 검색이 되지 않는군요.
4월 흑사리
우리나라 화투에서는 '흑사리'로 불리는 이 나무는 실제 등나무(藤-후지) 줄기와 잎을 그린 것입니다. 아래 그림은 등나무 사진인데 화투의 흑사리처럼 생겼지요?
참고로 흑사리는 어떤 식물인지요? 그동안 그러려니 했는데 이 글을 쓰다가 막상 흑사리의 정체가 궁금해져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안 나오더군요.
그리고 비둘기는 일본에서는 '평화의 상징이 아니라' '예의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사실 비둘기만큼 포악한 새도 없는데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된 것도 우습지만 일본에서는 예의의 상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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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일본에서 '비둘기는 나뭇가지에 앉아도 부모 비둘기보다 낮은 나무가지에 앉는다'라고 여길 정도로 예의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등나무는 명문 가문의 상징으로 많이 쓰이는데 그 명문 가문의 예의를 지키는 비둘기. 그런데 등나무의 한자 藤와 그의 훈독 '후지'. 저 한자는 일본 사람의 이름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후지와라(藤原), 후지모토(藤本),후지타(藤田) 등등...
즉, 명문가의 상징이며 그 명문가의 예의를 의미합니다.
5월, 창포
우리나라에서 흔히 5월 단오 날이 되면 동네 처녀들이 흐르는 물에 창포로 머리를 감는데 그 창포의 향기가 상당히 향기롭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난초'라고 부르는 5월, 초는 바로 창포를 의미합니다.
6월, 목단
화투를 치시면서 6월 목단 십끗자리를 보시면서 신라 시대의 선덕여왕의 일화를 떠올린 분들 상당히 많으실 겁니다. 선덕여왕이 공주였을 때 당나라에서 그림 하나를 보내왔는데 그 그림에는 모란이 그려져 있었고 그 그림을 본 선덕여왕은 ‘이 모란은 향기가 없는 꽃'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라는 아버지 왕과 신하들의 질문에 나비가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였고 훗날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이 실제로 향기가 없어서 선덕여왕의 총명함은 어릴 때부터 널리 알려졌다.’라는 일화가 있는데 일본 모란에는 향기가 있다?
화투가 만들어진 당시에 무슨 유전공학이나 재배법이 발달되지도 않았을 테니 모란에 향기가 있을 리는 없고 아마 이것을 제작한 사람이 착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화투에서 패가 안 풀릴 때는 목단 열끗자리도 요긴하게 쓰이니까?
7월, 홍사리
조선을 침공한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을 통일하기 전까지 일본은 전쟁의 역사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인구 증산을 이유로 성 개방 풍조가 일어났으며 지금도 일본이 성에 관한 한, 한국보다 더 개방적인 이유가 바로 그렇습니다. 혹자는 ‘일본인이 오히려 성에 더 보수적이다’라고 주장하는데 그 부분은 확실히 뭐라 이야기하기 힘들군요.
바로 이런 자손번창의 '꿈'이 일본 전통 의상 기모노에 있습니다. 아닌 말로, 언제 어느 곳에서나 '행위'를 할 수 있게 고안된 옷이 기모노라는 말이 있듯, 일본의 오랜 전란 속에서 '자손 번창'은 일본인들의 바램 중 으뜸이었습니다. 그런 바람이 화투 속에서도 스며든 것입니다. 멧돼지는 바로 산 속에서 좋은 것만 먹으며 자손을 번창시키는 동물입니다. 즉, 상서로운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홍사리는 7월의 만개한 싸리나무(萩)를 의미합니다.
8월, 팔공산
바로 위에서 언급한한국식 화투와 일본식 화투의 차이점 중 하나입니다.
팔공산의 광은 바로 '일장기'에서 상징하는 해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8월의 피 두 개에는 허공으로 남겨져 있는데 일본식 화투에는 각각 일본의 가을을 상징하는 일곱 가지의 초목이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실제 일본식 화투의 그림을 얻으려고 국내 싸이트는 물론, 야후 재팬 싸이트를 샅샅이 뒤져 보았는데 없더군요. 나중에 다시 검색해서 찾아지면 올리거나 아니면 일본 출장가게 되면 디카로 찍어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참조로, 일본의 가을을 상징하는 7가지 식물은 싸리, 참억새, 칡, 패랭이, 마타리, 향등골 나무 및 도라지 등을 말합니다. 마타리는 우리나라에서는 약초로 쓰이는 식물입니다.
9월,국진
국진에 그려진 꽃은 국화입니다.
그리고 그 국화로 만든 술을 술잔에 부어 마시며 가을의 정취를 즐겼는데 일본의 중앙절은 9월 9일이고 이에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국'진'인지에 대하여는 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술잔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제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에서는 '진'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지를 않습니다.(나중에 추가, 보완하겠습니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국화 재배의 나라인데 이것은 근세 일본의 에도시대 때부터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일왕의 가문의 문양이 국화잎 16장이라고 하는데 아마 무병장수를 기원하면서 정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화투의 5월 창포와 9월 국진 두 개의 월에는 동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향기에 취하고 또한 술을 마시는 동물은 유일하게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을 그려 넣지 않고 동물도 그려 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0월, 단풍
10월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단풍의 계절인가 봅니다.
단풍이 그려지고 단풍과 별로 관계가 없는 사슴이 그려진 것은 사냥철의 의미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단풍을 보며 아름다운 자연을 연상하는데 일본은 단풍을 보며 사냥을 연상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비록 외침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란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고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을 통일하기 전까지 오랜 전란을 겪었기 때문에 이런 '전투적'인 사고에 젖지 않았나 하는 추측입니다.
11월, 오동
이 글의 핵심인 11월 오동. 왜 오동을 우리는 '똥'이라고 불렀을까요?
혹자는 발음이 비슷해서라는 '농담 아닌 농담'도 합니다만 이 11월 오동에는 우리 민족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여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오동에 대한 표현을 여기에 다시 적습니다.
오동을 한자로 쓰면 오동(梧桐)이 되어 사람들은 이것을 오동나무라고 착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한자 해석입니다. 우리 문헌에서는 벽오동 나무를 오동(梧桐)으로 표기해왔으며 오동나무는 단지 오(梧)자로만 표기해왔기 때문에 화투에서의 오동은 벽오동 나무를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오동 '광'에 있는 동물이 무슨 동물일까요? 바로 '봉황'이며 이 봉황은 일왕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고대 중국 사람들은 상상 속의 상서로운 새를 만들어 냈는데 기린, 거북, 그리고 용과 함께 이 상상하는 상서로운 새로 봉황을 설정했고 그 봉황은 영물이며 덕망 있는 군자가 천자의 지위에 오르면 출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봉황은 식성이 꽤나 까다로운 새여서 벽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이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작자 미상인 이런 시를 한 두 번은 접해 보셨을 겁니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잣더니 내가 심는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만 일편명월(一片明月)이 빈 가지에 걸려있네"
이렇게 화투에는 일왕을 신성한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그 신성한 상징으로 봉황을, 그리고 그 봉황이 앉는다는 벽오동 나무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조선을 '왜구'라고 천시하던 조선 지배층은 물론 조선 민중은 비록 화투를 칠 망정 그 것을 인정하지 못했겠지요. 그래서 '오동'을 '똥'으로 바꾸어 부른 것입니다.
일종의 '일왕의 격하한 호칭' 쯤 되는 것으로 일왕=똥으로 등치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 화투에서 11월, 비에서 서예가 오노호두를 내세워 왕을 찬미하고 그리고 12월 일왕을 상징하는 오동이 나타나서 화투는 완성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11월과 12월을 바꾸었고 그래서 화투에 어린 일왕 찬양을 원천 무효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똥으로 격하하기까지 했습니다.
12월, 비
우리나라 민중에 의하여 바뀌기는 했지만 12월 비 '광'에 우산을 바쳐 들고 있는 사람은 일본의 유명한 서예가 오노호두입니다. 화투의 12개 월, 48장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오노도후(おのどうふう、小野道風、894 - 966)헤이안(平安)시대의 일본의 3대 서예가 중 한사람인 오노도후는 우리나라의 한석봉과 비슷한 일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오노도후는 글씨 공부가 진척되지 않자 아예 붓을 꺽어 버리고 방을 나섰다고 합니다. 이리저리 거닐면서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 중에 버드나무 아래에서 계속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버드나무 가지에 뛰어 오르려고 애쓰는 개구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노호두는 이 개구리를 지켜보았고 그리고 실패를 거듭하던 개구리는 결국 나뭇가지 오르기에 성공했는데 그 개구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오노호두는 큰 깨우침을 받아 다시 서예 공부를 하여 그의 이름을 떨쳤다고 합니다.
이설에는 이 비에 나오는 우산을 든 사람이 일본 전통극인‘카나데혼추신구라(名手本忠臣)’의 주인공인 산적인 '사다구로(定九)'와 동일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산적 사다구로는 한 사냥꾼에 의하여 멧돼지로 오인되어 활에 맞아 죽었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가 화투의 기원이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이 산적 사다구로 이야기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 때 일왕에 의하여 서예가 오노호두로 바뀌었다는 일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래 그림은 오광만 따로 추린 것입니다.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예. 바로 '광(光)' 자가 비광에 만 화투 위쪽에 붙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서예가 오노호두가 본 개구리는 비가 내릴 때만 운다는 청개구리로서 따라서 청개구리의 상징인 '반대로 하기'라는 의미에서 '광(光)'자를 비광에 만 화투 위쪽에 붙인 것이라는 설과---.
두 번째는 일본의 안녕과 일왕을 기원하는 화투를 '너희들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며 11월과 12월을 바꾸면서 화투에 담긴 일왕 축복을 완성치 못하게 하며 오히려 '거꾸로' 한민족을 기원하는 뜻에서 비광의 '광(光)'자만 화투 위에 붙인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 기원이 어떻든 간에 이제는 국민 놀이가 된 화투는 특히 명절 때 온가족이 둘러 않아 웃음꽃을 피우며 놀던 놀이가 되었는데 즐거운, 그러나 너무 넘치지 않게 화투를 치시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주1.소니는 트랜지스터 기술을 이용한 트랜지스터 기술로 일약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는데 그 이전에 소니는 도쿄[東京]통신공업이라는 명칭의 회사였다. 화투의 소니 제작설은 일본인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인데 왠 일 인지 이 부분은 문서상으로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주2.천황이라고 하지 않고 '일왕'이라고 한 것은 굳이 설명드리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만, 맥락 상 혼동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주를 붙입니다.
- 옮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