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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편의 이야기

잘 되고 있어 2019. 2. 9. 15:31

                                    



한 남편의 이야기

  

Music : 잊으리 - 경음악 


저는
결혼 8년차에 접어드는 남자입니다.

저는 한 3년전 쯤에 이혼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었습니다.

그 심적 고통이야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 못하지요.

저의 경우는
딱히 큰 원인은 없었고

주로

아내 입에서 이혼하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더군요.



저도 회사생활과 여러 집안 일로
지쳐있던 때라 맞받아 쳤구요.

순식간에 각방쓰고
말도 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 갔구요.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밉게만 보이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암묵적으로

이혼의
타이밍만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도 눈치가 있는지

언제부턴가 시무룩해지고
짜증도 잘내고

잘 울고 그러더군요.



그런 아이를 보면

아내는
더 화를 불 같이 내더군요.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계속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러는 것이
우리 부부 때문에

그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요.

가끔 외박도 했네요.

그런데
바가지 긁을 때가 좋은 거라고

저에 대해
정내미가 떨어졌는 지

외박하고 들어가도
신경도 안 쓰더군요.



아무튼 아시겠지만

뱀이
자기 꼬리를 먹어 들어가 듯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러기를 몇 달,
하루는 퇴근 길에

어떤 과일 아주머니가
떨이라고 하면서

귤을 사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다 사서
집으로 들어 갔답니다.



그리고
주방 탁자에 올려 놓고

욕실로 바로 들어가
씻고 나오는 데,

아내가
내가 사온 귤을 까먹고 있더군요.

몇 개를 까먹더니
"귤이 참 맛있네"

하며
방으로 쓱 들어 가더군요.

순간
제 머리를 쾅 치듯이

하나의 생각이
떠 오르더군요.



아내는 결혼 전부터
귤을 무척 좋아 했다는 것하고,

결혼후 8년 동안
내 손으로 귤을

한번도 사 들고
들어 간 적이 없었던 거지요.

알고는 있었지만

미처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뭔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예전 연애할 때,
길 가다가 아내는

귤 좌판상이 보이면
꼭 천원어치 사서

핸드백에 넣고
하나씩 사이좋게 까먹던

기억이 나더군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 져서

내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답니다.



시골집에 어쩌다 갈 때는
귤을 박스채로 사들고 가는 내가,

아내에게는 8년 간이나
 
몇 백원 안하는 귤 한 개
사 주지 못했다니

마음이
그렇게 아플수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에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전혀 쓰지 않게
되었다는 걸 알았지요.

아이 문제와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반면 아내는
나를 위해 철마다 보약에

반찬 한가지를 만들어도

내가 좋아 하는 것들로만
신경 많이 써 줬는데 말이지요.

그 며칠 후에도,
늦은 퇴근길에 보니

그 과일
좌판상 아주머니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또 샀습니다.



저도 오다가
하나 까먹어 보았구요.

며칠 전
아내 말대로 정말 맛 있더군요.

그리고
살짝 주방 탁자에 올려 놓았죠.

마찬가지로 씻고 나오는데

아내는
이미 몇개 까먹었나 봅니다.

내가 묻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않던 아내가

" 이 귤 어디서 샀어요? "
" 응 전철 입구 근처 좌판에서 "

" 귤이 참 맛있네 "
몇 달만에 아내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도
몇 알 입에 넣어 주구요.

그리고
직접 까서 아이 시켜서

저 한테도 건네주는
아내를 보면서

식탁 위에 무심히
귤을 던져 놓은 내 모습과

또 한번 비교하며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뭔가 잃어버린 걸 찾은 듯

집안에 온기가
생겨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아내가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보통 제가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사이가 안 좋아진 후로는

아침을 해 준적이 없었는데.
그냥 갈려고 하는데,

아내가 날 붙잡더군요.
한 술만 뜨고 가라구요.

마지못해 첫 술을 뜨는데,

목이 메여
밥이 도저히 안넘어 가더군요.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같이 울구요.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다는 한마디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부끄러웠다고 할까요.

아내는 그렇게 작은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작은 일에도 감동받아

내게로
기대 올 수 있다는 걸 몰랐던 나는

정말 바보 중에
상바보가 아니었나 싶은게

그간 아내에게
냉정하게 굴었던 내 자신이

후회스러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후,
우리 부부의 위기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가끔은 싸우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귤이든 뭐든 우리 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주위를 둘러 보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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