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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짜리 명품 막걸리

잘 되고 있어 2009. 10. 24. 11:48

 



 100만원짜리 명품 막걸리
  

  • # 막걸리 vs. 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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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걸리의 진화는 놀랍다. 막걸리의 괴로운 숙취를 기억하던 우리 세대로선 막걸리가 이토록 뒤끝 깨끗한 술로 재탄생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막걸리가 일본 사케(청주)를 넘어 글로벌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느냐에 대해 나는 낙관적이지 않다. 막걸리가 '싸구려의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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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롯데호텔 한식당에는 6종류의 막걸리가 팔리고 있다. 그중 가장 비싼 것(국순당 이화주)엔 6만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사케는 어떨까. 같은 롯데호텔 일식당에서 사케는 가장 싼 게 6만원이고, 무려 150만원짜리도 있다. 일본 주류상점에 가면 소비자 가격이 10만엔(약 130만원)을 넘는 초고가 사케도 수두룩하다. 반면 일본에 수출되는 막걸리는 525엔(약 6800원·국순당 '미몽')짜리가 가장 비싼 것이다. 이러다 영원히 '싸구려' 낙인이 찍힐까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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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명품 사케들이 비싼 값을 붙이는 것은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최상품 쌀을 60~70% 깎아내 알짜배기 정수(精髓)만으로 몇 년간 숙성시켜 빚었다는 식이다. 요컨대 100만원짜리 사케는 술 자체보다 술에 담긴 스토리를 100만원에 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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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걸리는 왜 파격적으로 비싼 명품을 못 만들까. 맛 좋은 막걸리를 값싸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은 막걸리 애호가로서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가격표에 100만원쯤은 호기롭게 매길 수 있는 명품 막걸리도 몇 개쯤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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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솔길 vs. 철학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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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교토에 '철학의 길'이란 관광 코스가 있다. 안내 책자엔 저명한 철학자가 명상하며 산책하던 곳이라고 적혀 있다. 몇 년 전 교토 출장 갔을 때 멋진 이름에 혹해 찾아갔다가 약간은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운치 있는 오솔길이었지만 버스를 갈아타면서까지 찾아갈 만큼 대단한 곳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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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문화 화장술'은 탁월하다. 평범한 오솔길에 약간의 스토리 요소를 얹어 '철학의 길'이라는 엄청난 이름으로 포장해 내다니, 우리는 낯이 간지러워서도 못한다. 훌륭한 소재를 갖고도 포장이 서툴러 제 대접 못 받는 우리는 순진한 건가, 바보 같은 건가.

  • - 박정훈 사회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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